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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가 커피를 사랑했을 때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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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뉴욕 박람회, 실험실에서 막 꺼내온 듯한 유리병 하나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밖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부족한 자원인 철과 알루미늄 대신 잘 쓰지 않는 유리만으로 만들어진 이 물건의 정체는 바로 커피메이커. 푸어오버 매니아들이 사랑하는 ‘케맥스(Chemex)’의 첫 데뷔 순간이다.

 

예술이 먼저 알아보다

194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정기간행물에서 ‘전쟁기의 쓸모 있는 사물들(Useful Objects In Wartime)’ 중 하나로 ‘케맥스’를 선정한다. 전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자원을 활용한 점, 당시 유행하던 유선형 디자인의 장식성을 탈피해 간결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이 그 이유였다. 플라스크를 닮은 모양새, 이름에서부터 강하게 풍기는 과학의 냄새(‘화학Chemical’에서 유래했음이 매우 드러나는)를 가진 이 독특한 물건은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피터 쉴럼봄(Peter Schlumbohm)의 작품이다. 쉴럼봄은 실험실의 플라스크를 여러 형태로 변형하면서 현재의 모습과 같은 에어 채널이 달린 깔대기 모양의 플라스크 형태를 도출해냈다. 이 아름다운 발명품은 일리노이 공대에서 현대 최고 디자인 상품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은 물론 뉴욕현대미술관과 코닝유리박물관, 스미소니언 협회 등에 영구 보존품으로 소장되어 그 예술적 가치를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커피는 과학이다

화학자답게, 쉴럼봄은 커피 추출에 알맞게 다양한 화학원리를 적용했다. 엑스자 모양을 그리는 형태는 그 각도와 깊이 모두 커피의 아로마를 보존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커피를 추출할 때, 필터가 물에 젖으면서 유리와 밀착되어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하고 내부에 남아있는 공기는 에어 채널을 통해 배출한다. 커피를 통과해 내려진 뜨거운 물이 발생시키는 수증기로 인해 높아진 압력이 에어 채널을 빠져 나가게끔 한 원리인데, 다른 드리퍼와 달리 필터와 드리퍼 표면이 밀착되고 에어 채널은 매우 좁아 배출되는 수증기의 양도 최소화할 수 있다. 때문에 추출이 완료되었을 때 아로마는 서버 안에 완벽하게 보존된다. 넓은 바닥면은 커피와 공기가 폭넓게 만나 풍부한 아로마를 생성하고 잘록한 허리는 아로마가 외부로 확산되지 않게끔 한다. 본체의 소재는 실험실용 내열 유리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파이렉스(Pyrex)를 차용함으로써 내구성과 내부식성도 우수하다. 환경 호르몬 걱정은 두말하면 잔소리.

필터는 어떨까. 화학실험실에서 흔히 쓰는 콘 형태의 두꺼운 종이필터를 사용함으로써 추출의 안정성을 높였다. 소나무 섬유질과 보리 등 곡물 성분이 함유되어 일반 필터보다 30% 정도 더 두껍다. 이 성분들은 추출할 때 발생하는 나쁜 산과 지방 성분을 세밀하게 걸러주어 ‘케맥스’하면 떠올리는 깔끔한 맛을 만들어준다. 다른 필터와 대비했을 때 동일 면적 대비 2~30% 더 무겁기 때문에 커피 가루를 완벽하게 걸러내면서 적절한 추출 속도를 유지해주는데, 이는 드립 방식에 따른 맛의 차이가 적어 언제나 일관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튼튼한 짜임과 탁월한 신축성으로 8잔 이상의 많은 양의 커피를 추출할 때도 필터가 풀어지거나 터지는 일 없는 강력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원두의 굵기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것 역시 바로 이 필터 덕분이다.

 

“커피 메이커는 커피를 만들어야 한다”

1896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 온 쉴럼봄이 196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등록한 특허나 발명품은 3천여 개에 달한다. 케맥스는 그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자인이다. 바우하우스, 세계대전은 그에게 현대의식과 특별한 영감을 주었고, 커피를 사랑했던 그에게 있어 케맥스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테이블은 반드시 하나의 테이블이어야 한다. 즉 의자는 의자이고, 침대는 침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1938년 커피에 대한 열망이 끓어올랐을 때 내 관점은 단순했다. 커피메이커는 (커피다운) 커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물리, 화학적인 지식을 모두 적용했다.”

쉴럼봄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원리와 실험실 도구를 이용해 가정용 커피메이커의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표본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용량과 제작방식에 따라 다양한 케맥스를 가정에서도, 스페셜티 카페에서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것. 화학자가 커피를 사랑한 스캔들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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