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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머신은 왜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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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흔히 ‘모든 것은 장비빨’이라고 한다. 물론 연장 탓을 할 수만은 없지만, 제대로 실력을 갖추기만 했다면, 하이엔드 머신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백선생도, 연희동 복셰프도 연장만으로도 철철 넘치는 포스를 가지지 않았는가!! 나같은 커피쟁이에게 하이엔드 에스프레소 머신이란, 뭐랄까, 정말 엄청난 비장의 무기 같은 느낌이 있다.

이번 2018 서울카페쇼에서도, 화려한 하이엔드 머신들이 뿜어내는 찬란한 기운에 또 한 번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세월이 발전할 수록, 최첨단 기능을 가진 좋은 머신들은 쏟아져 나온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네아 클래식linea classic을 만났을 땐 역시 기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가다듬게 된다.

 

하이엔드 머신은 왜 하이엔드일까?

그라인더를 6대나 쓰는 카페 속 슬레이어 에스프레소 by Dennis Tang

하이엔드 머신은 비싸다. 그렇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수백만 원 대부터, 수천만 원 대까지 폭 넓은 가격대를 가지고 있다. 흔히 비싸다고 하는 라마르조코나 슬레이어, 키스 반 더 웨스턴 급으로 가면 3그룹 기준 2천만 원 대를 훅 넘는 가격에 손이 떨린다. 도대체 이런 머신들은 왜 비쌀까? 비싼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상업용 머신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무엇일까? 바로 일관성이다. 피크 타임에 얼마든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머신이 좋은 머신이다. 예전에 학교나 회사에서, 정수기 온수가 다 빠져 컵라면에 찬 물을 받은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면,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일러 용량은 한계가 있다. 손님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상황에서, 커피 보일러 온도가 뚝 떨어진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일반적으로 하이엔드 머신의 기술력은 이 ‘일관성’에 몰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일정한 품질의 커피를 추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바로 비싼 이유가 된다.

바리스타뉴스에서 소개한 하이엔드 머신 기사: 하이엔드 에스프레소 머신을 디자인하는 방법

 

 

듀얼 보일러 그리고 독립 보일러

라마르조코의 듀얼보일러 그리고 포화그룹 image from flickr

일반적으로, ‘하이엔드급’이라 불리는 머신들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보일러를 가지고 있다. 커피 보일러와 스팀 보일러를 최초로 분리시킨 ‘듀얼 보일러’의 개념은 1970년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인 라마르조코la marzocco의 GS 시리즈로 시작되었다. 기존 1대의 보일러에서 커피 추출과 스팀을 동시에 사용할 때의 단점은 온도가 일관되게 유지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스팀을 뽑으면 그만큼 온수가 빠져나가면서, 찬물이 다시 유입되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물 온도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팀과 커피 보일러가 분리되면서, 스팀과 커피 추출은 개별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된다. 보통 스팀 보일러는 120ºC, 커피 보일러는 90ºC 전후의 온도를 유지하게끔 설정한다. 박지성이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면, 하이엔드 머신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보일러를 가진 셈이다.

예쁘기만 해서 하이엔드 머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진은 Kees Van Der Westen의 spirit

키스 반 더 웨스턴KEES VAN DER WESTEN의 스피릿Spirit, 라마르조코의 스트라다strada, 시네소SYNESSO의 하이드라HYDRA, 슬레이어SLAYER의 슬레이어 스팀SLAYER STEAM 급의 모델들은 여기에 더욱 상향된, 독립 보일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까 2그룹이라면 각 그룹헤드 당 보일러가 독립적으로 들어가 커피 보일러가 2개, 스팀 보일러가 1개, 총 3개의 보일러를 갖춘 셈이다. 독립 보일러의 경우 그룹헤드마다 추출온도를 다르게 설정할 수있다. 원두의 종류를 다양하게 취급할 경우 각기 적합한 온도를 설정해 추출을 보다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 스페셜티 전문 카페인 경우에는 더욱 필요한 기능이다.

피크타임에서 연속추출을 할 때, ±0.2~0.5℃ 오차 범위 내에서 변하지 않는 온도는 하이엔드 머신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된다.

 

좋은 머신은 스팀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예 모델 명이 ‘steam’인 SLAYER STEAM

슬레이어는 아예 모델 이름 자체가 에스프레소, 스팀으로 나누어진다. 슬레이어 스팀은 온도 맞춤형 드라이 스팀이 가능하고, 두 개의 스팀 완드 각각에 스팀 공급량이나 온도를 프리세팅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이 모델에 장착된 vaporizer는 더 적은 수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강력하고 효과적인 열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수증기가 적게 사용되면 우유가 희석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2018서울카페쇼 라마르조코 부스에서는 수십 명의 대기자들에게 가정용머신 리네아 미니로 라떼를 제공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라마르조코의 리네아 미니linea mini는 애초에 가정용 머신으로 고안되었다. 내가 아는 몇몇 구매자들은 라떼 아트 연습용으로 미니를 사용하기도 할만큼 강력한 스팀 기능을 자랑한다. 가정용 머신 조차도 듀얼 보일러를 적용한 경우인데, 작은 덩치 속에서도 빵빵한 스팀을 자랑하니, 600만원이 넘는 가격이 이해가 갈 정도다. 작은 공방이나 개인 카페, 갤러리 같은 곳에서는 리네아 미니 한 대로도 영업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니 말은 다 한 셈. 실제로 이번 2018 서울카페쇼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라마르조코 부스에서 진행한 트루아티즌 카페에 참가했던 듁스 커피DUKES COFFEE는 리네아 미니 두 대로 길게 늘어선 참관객들에게 ‘핫초콜릿’을 제공한 바 있다. 실로 스팀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프리인퓨전

프리인퓨전, 하이엔드 머신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앞서 ‘일관성’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떠올려보자. 요즘은 오토탬핑 기능이 추가된 그라인더(라마르조코의 불카노 스위프트vulcano swift 같은 모델)들도 등장하고 있듯, 탬핑은 바리스타 하면 떠올리는 필수 동작 중 하나이면서도 일관성이 또한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일정한 압력을 가해 수평으로 탬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탬핑에서 문제가 되면 커피 퍽에 크랙이 발생해 균일한 추출이 어렵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2단 탬퍼 같이, 적정 압력에 미치면 그제서야 탬핑이 되는 도구도 있다. 과거에 탬핑을 강하게 하도록 교육한 이유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밀어내는 9bar의 압력을 커피 퍽이 견디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프리인퓨전 기능이 있다면, 탬핑은 조금 미숙해도 큰 문제가 없다.

좋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균일하게 원두 가루를 적셔 커피의 맛을 골고루 뽑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인퓨전을 내 식으로 설명하자면, ‘미리 적심’인데, 본격적인 추출 전에 골고루 커피 퍽을 적셔 줌으로써, 이후에 일정한 압력을 밀어줄 때 커피 퍽전체로 골고루 물이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이엔드 머신만 인퓨전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엔드일수록 프리인퓨전의 기술이 보다 정밀하게 들어가는데, 시네소의 MVP하이드라는 인퓨전 시간을 원하는 만큼 설정하고 그 값을 저장할 수 있다. 슬레이어는 잘 알려진 바대로, 니들 밸브를 조절해서 프리인퓨전 추출 유량 설정이 가능한데, 핸드드립의 섬세한 뜸들이기를 지향해 ‘프리브루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물론 라마르조코 스트라다처럼 그때그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머신 내부의 니들 밸브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추출 중 작업이 힘들다는 건 함정.

(사족)  원두의 성질에 따라 프리인퓨전이 적합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 프리인퓨전을 무조건 고집할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 – 얼마나 오래, 얼마나 튼튼하게

하이엔드 머신이 왜 비싼가? 라는 질문에 실제 유명 머신 업체의 테크니션은 이렇게 답했다. “부품이 다르니까요.” 그렇다. 실제로 하이엔드 머신의 내구성은 중저가 머신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1998년 제조한 리네아 클래식. 여전히 쌩쌩하다! by Marzocco Service UK @marzoccoservice

몇 년 전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난 60대의 바리스타는 벌써 20년 넘게 라마르조코 리네아 머신을 사용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머신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리네아(아마도 우리가 지금 부르는 명칭은 클래식일 것이다)는 노장 바리스타의 든든한 동료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는 세월에 닳고 닳은 터치 패드를 보여주었다.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정밀한 부품을 만들고, 또한 100% 핸드메이드로 제작하는 등, 하이엔드 머신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좋은 재료와 엄선된 부품,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내는 공정에 있다. 잔고장이 적어 상업용으로 사용하기에 최적이 되는 머신. 그것이 진정한 하이엔드가 아닐까? 잔고장이 잦아 자주 수리를 해야 하고, 또한 영업에 지장을 준다면? 고객은 기다리다 지치는데 겨우 나온 한 잔이 차갑게 식은 한 잔이라면? 커피의 맛을 살리기는 커녕, 기운을 쭉 빼는 추출이라면?

블루보틀이 아직 좁은 골목 구석의 작은 카페였을 때에도, 프리먼은 라마르조코 머신을 가져다놓았다. 가게의 입지가, 인테리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잔의 커피 그 맛이 얼마나 일관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당장 하이엔드 머신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내 카페를 처음 오픈했을 때는, 그전 사장님이 쓰던 낡은 구형 머신을 물려받았었다. 하지만 하이엔드가 왜 비싼지를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스킬을 먼저 잘 단련해놓는다면, 때가 되었을 때, 그 비기를 정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진짜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본 기사 내용은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으며, 바리스타 뉴스의 전체적인 입장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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