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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머신 영업사원, CEO가 되다!: 라마르조코 CEO Guido Bernardinelli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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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인터뷰는 지난 달 스프럿지에서 발행한 기사를 번역해 옮기는 것임을 밝힙니다.

스프럿지 경영자 인터뷰The Sprudge Executive Interview는 스프럿지의 새로운 연재시리즈로, 스페셜티 커피 업계를 아울러 설립자, CEO, 그리고 경영진들과의 일대일 만남을 통해 진지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는 전세계의 커피 리더들의 내면을 솔직히 드러내는 이야기다. 2020년 이 프로그램은 매월 팟캐스트로도 확장될 예정이며, 이는 스프럿지 미디어 네트워크의 팟캐스트 플랫폼 확장 계획은 한 부분이 된다.

오늘 스프럿지 경영자 인터뷰를 처음으로 장식해 줄 손님은 바로, 라마르조코 인터내셔널의 CEO인 구이도 베르나디넬리Guido Bernardinelli(이하 Bernardinelli)이다. 라마르조코 브랜드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쥬셰뻬 밤비와 브루노 밤비 형제에 의해 1927년에 설립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라마르조코는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성장의 대명사가 되어왔다.  이는 특히 전 CEO였던 켄트 바케Kent Bakke의 재임기간 동안 더욱 두드러졌다. Bernardinelli는 2002년 세일즈 역량으로 이 회사에 합류해 밀라노의 마케팅과 배송 허브부터 국제 성장까지 아우르며 브랜드를 이끄는 데 도움을 주었다. 2009년, 그는 관리 이사로 승진했으며, 2018년에는 국제 이사진의 동의를 통해  CEO로 지명되었다.

스프럿지는 라마르조코의 아카데미Accademia del Caffè Espresso 개관일 전날 Bernardinelli를 만났다. 아카데미는 스페셜티 커피를 위한 교육과 혁신 센터로, 반 세기 이상 이어져오는 라마르조코의 공장 본사가 위치한 플로렌스 고지대에 설립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2019 호스트 밀란the 2019 HOST exhibition in Milan에 이어 빠르게 성사되었는데, 이 행사에서 라마르조코는 이 회사의 첫 번째 자체 제작 그라인더 디자인과 독특한 자동 우유 스팀기, 브랜드의 아이콘 격인 스트라다와 GB5 에스프레소머신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제품과 프로토 타입을 선보였다.

스프럿지 경영자 인터뷰 시리즈의 모든 인터뷰가 그러하듯, Bernardinelli와의 인터뷰는 스프럿지의 공동설립자인 조던 미켈먼Michelman이 진행했고 역시 공동설립자인 재커리 칼센Zachary Carlsen이 사진을 담당했다. 이 인터뷰와 사진은 플로렌스의 라마르조코 아카데미에서 진행되었으며, 명확성을 위하여 부분적으로 편집되었음을 밝힌다.

 

반갑습니다, Guido Bernardinelli님, 오늘 스프럿지 경영자인터뷰에 함께 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막 밀라노에서 HOST 2019 를 마치고 오셨는데요. 그리고 내일은 새로운 아카데미 프로젝트의 개관을 앞두고 있죠. 하지만 오늘 바로 지금, 생각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지요?

정말이지 엄청난 한 주였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 한 주중 하나였어요. 밀라노에서 우리의 파트너들과 투자자들과 멋진 미팅을 했고, 아마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혁신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양분해 부스를 구성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싶어서였죠. 우리는 함께 나아갈 로스터들을 위한 중립적인 공간과 커뮤니티를 제공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가? 혹은 우리가 커피의 진보를 위한 혁신을 만들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부스의 두 면 모두 성공적이었습니다. 물론 혁신 측이 아주 조금 더 컸겠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소통을 위한 많은 신제품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이번 쇼에 참여한 것은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HOST는 큰 행사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요…. 사실, 때로는 너무 커 보이기도 하죠.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사이즈를 과대 포장하는 느낌도 듭니다. 말하자면, 모두를 포괄하는 일종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이 산업의 모든 방면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죠. 스페셜티만큼이나 지역, 유럽 그리고 전통적인 것과도요.

 

HOST 2019에서 가장 흥미를 느낀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우리 팀과 우리의 인터내셔널 팀이 흠잡을 데 없이 합을 맞추어 함께 일하는 것을 보는 데 매료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이 회사의 중심부와 행사에 두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아시다시피,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것, 행사를 이루어내는 것, 결정을 짓고 우리 회사를 위한 놀라운 경험들을 이끌어내는 것- 모두 ‘사람’이죠. 그저 완전히 회사를 위해 자신을 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유스팀기, 어플리케이션, 새로운 그라인더의 시연에 정성을 쏟았죠. 그저 쉼없이,  한 번에 같은 공간에 모인 백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냉방시설 없이 뜨거운 조명 아래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 제품을 개발한 사람들이 가장 제품을 잘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우리의 고객들은 유독 매우 재능있는 분들이 많고, 덕분에 제품을 잘 이해하죠. 그들은 기술에 대한 편향이 있습니다. 나는 제품을 개발해놓고 실험실의 내용을 알지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HOST에 데려다 놓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게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서, 라마르조코에서의 우리의 방향은 고객을 위해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위해서 더 좋은 방향이고, 나아가 더 나은 연결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Guido님, 당신의 첫 에스프레소는 어땠습니까? 

누구도 제게 그 질문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소름 돋네요.

저희 어머니, 제가 22살 때 돌아가셨는데요. 영어 교수셨는데 커피 광이셨죠. 하루 종일 커피를 마셨습니다. 항상 커피를 사러 가셨고, 저를 늘 제리고 다니셨서요. 오래 전인 그때는 지금과 달리 우리 나라의 커피가 더 썼습니다. 여러 면에 있어서요. 우리 가족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죠. “오, 구이도랑 걔 엄마가 또 커피를 마시고 있네!” 보통, 집에서는 모카 포트로 마셨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네스카페를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요. 그 이유는 어머니께서 영국에서 오래 사셨기 때문입니다. 밀라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캠브리지에서 학위를 따셨거든요. 어머니가 귀국했을 때는 네스카페를 좋아하셨지만, 곧 에스프레소로 전향하셨죠. 저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게 기억나네요. “구이도는 언젠가 커피 일을 하게 될 거야. 그 앤 항상 커피 바에 있잖아!”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정확하셨군요.

저희 할아버지는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에 사셨는데, 그 곳은 바 카운터를 만들기로 유명한 공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커피 바를 만드셨죠. 우리 동네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 중 하나가 있었습니다. 거의 마을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 시장은 가능한 모든 화재관련 법, 안전 법 등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리고 하루 종일 열렸죠. 아침만이 아니라요. 그 마을은 스위스 국경에 접해 있었는데, 덕분에 많은 스위스인과 독일인들이 매주 오곤 했어요. 우리는 독일 말을 쓰는 관광객들에게 침략당한 거죠! 아마도 그 덕분에 다른 동네에 비해서 제가 자란 곳이 하루 커피소비량capita이 더 많은 이유가 됐을 겁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매주 수요일이 다가오면,  그 시장이 열릴 수 있도록 일해야 했어요. 샌드위치, 커피, 맥주, 간단한 식사 같은 것들을 준비하면서요. 우리는 토요일에 학교를 가야했죠. 왜냐하면 수요일은 그 시장 때문에 쉬었거든요. 그게 저희가 자란 방식이었죠!

제 경험에서 커피는, 그다지 원재료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라마르조코 덕분에, 저에게 이것은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송화와 아카데미아 같은 프로젝트들 덕분에요. 하지만 이곳 이탈리아에서, 서비스 접대 분야에서 일하면서, 커피는 카페 라이프의 사회적 요소에 대한 것이 되었죠. 그리고 그것(사회적 요소)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카페 라이프와 좋은 커피에 대한 기대치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것을 라마르조코에서의 우리의 문화로 가져왔습니다. 회사 안에서 카페 문화를 시도하고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우리 부스와 공장, 파티, 모임, 리더십 활동을 보실 때, 그것은 같은 정신 안에 있습니다. 바로 카페 라이프의 연장이죠.

 

2002년에 라마르조코에 입사하셨는데요. 그 이후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그리고 무엇이 여전한 것인가요?

그 대답은 당신의 질문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회사가, 문화가 거기에 있죠. 우리는 여기, 언덕에 있습니다. 당신이 자전거 문화와 카페 라이프, 에스프레소 제품의 산지 그리고 이것이 커뮤니티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입니다. 이탈리아의 카페 문화는 이미 존재하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잘 숨겨진 비밀일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삶의 방식이죠.

달라진 것은 세상에 대고  우리가 이러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열정을 갖고 임합니다.  문화가 퍼질수록 이야기도 퍼지면서 스페셜티 커피는 성장해왔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확장해왔습니다. 로렌조 카보니Lorenzo Carboni와 제가 라마르조코에 2020년 입사했을 때, 우리는 정말 신나 있었습니다. 친밀한 경쟁자로서, 우리는 이 멋진 머신들을 플로렌스와 시애틀에서 보았고, 말했죠. “진짜 멋진데, 아무도 아직 이걸 몰라!” 우리는 그 기술에 정말로 감명을 받았죠. 마침내 그 일을 얻게 되었을 때, 저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더이상 세세하게 들어가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로렌조와 저는 앉아서 이야기했죠. “이봐, 무엇을 벤치마켓하지? 비즈니스 플랜은 뭐야?” 그 당시에는 한 대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죠. 안락함에서 떠난 상태로 일했습니다.  전 갓 태어난 아이가 있었는데, 매일 밤 밤새워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머신이 커피를 제대로 다루고 있다는 것에 대해 확고란 신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커피에서 더 나은 미래를 보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트렌드를 따르게끔 영감을 주고 또 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첫 번째 웹사이트를 기억합니다. 한 페이지짜리 카탈로그였는데요, 각양각색의 열대과일을 담은 과일 바구니를 옆에 둔 FB70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여주는 것이었죠.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웹마스터를 고용할 여력도 안 됐어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했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천천히… 천천히… 직접 했죠.

 

처음에는 세일즈맨으로 라마르조코에 입사했죠. 에스프레소 머신 한 대를 팔기 위해 가장 멀리 가본 곳은 어디입니까?

시베리아Siberia입니다.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Tierra Del Fuego(남미 남단의 군도)도 있군요.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Tierra Del Fuego라고요??? 

네! 계속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남아르헨티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는 우리가 말했죠. “우리 지금 아르헨티나에 있어요, 가봅시다.” 핸드폰도 없었어요. 저는 일단 그곳으로 가서 이탈리아로 제게 엽서를 보냈죠. 하지만 그땐 카메라도 같이 가져갔어요. 저는 항상 충분히 소통하길 바라는 데 불만이 있었어요. 충분히 설명하길 원하면서요.

어느 해, 여름 휴가 동안 저는 결심했습니다. 지금 내가 가면, 새로운 시장을 발견할 기회를 얻겠다고요. 그래서 카자흐스탄에서 시베리아까지 세 명의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면서 차로 운전해 갔어요. 차에 문제가 있었죠. 그 중  한사람  도축업자였는데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예전에 정신 병원이었다가 호텔로 개조한 곳에 내려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들은 밤새 양 한 마리를 삶아서 우리가 아침 식사로 먹게 해줬죠. 아주 약간, 시도는 했는데 거의 제대로 먹지는 못했어요. 이게 제 이야기들입니다. 거기서 별 다섯 개짜리 빵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 간 것도 기억 납니다. 최고로 멋진 패스트리와 라마르조코 에스프레소 머신, 그리고 벽에 총알 자국이 있었죠…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전 정말 어렸죠! 그게 벌써 17년 전입니다!

 

그러게 말이예요! 

제 생각엔, 아시다시피, 당신에게 우리가 작은 회사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게 중요할 것 같네요, 그 상황에서는요.

 

왜 그것이 당신에게 그렇게도 중요하나요? 

작은 회사는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오너의 귀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국제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도, 또한 이탈리아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단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저항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의 꿈에 의해 지탱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가장 놀라운 행운이었죠. 아마도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일해왔는지, 우리 중 일부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 표현해왔는지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측면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 문화 안에서 익숙하지 않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겪은 피드백의 특정 패턴을 받아들이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엄청난 좌절을 치르지 않고는 절대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국제적인 경험이 해온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화의 시장과 우리 팀의 정신에 있어 국제적 다양성을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훨씬 더 가치있는 일입니다.

러시아 사람들과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결코 휴가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는 사회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팔기 위한 기회였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요. 우리가 알았던 것은, 우리가 달에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내야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정말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있죠. 제가 덴버에 갔을 때가 기억 나네요. 그 전엔 한 번도 덴버에 간 적이 없었죠. 그리고,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호텔 전화번호부에 있는 비즈니스 페이지를 움켜쥐고 호텔 로비의 로터리식 전화기가 있는 전화 코너에 가서,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커피 회사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 사고 싶으신가요? 오늘이 바로 당신의 행운의 날이군요!”

아시겠지만, 회사를 키우면서, 우리가 한 모든 것은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요트를 사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는 5백만 달러의 투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 만큼이나 우리가 즐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키우기에 충분한 임금과 연관되어 있고,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커피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초기부터, 저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2004년과 2005년에 저는 겨우 1년에 40일만 이탈리에 있었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왜 존재하고, 우리가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제가 지금 꼭 묻고 싶은 질문은요, 어떻게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가입니다. 라마르조코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오래되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매우 새로운 회사입니다. 그것이 아카데미아가 매우 예술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요? 현재 리더로서, 그리고 CEO로서요.

이러한 제품들의 혁신을 현대 사회 쪽으로 가져오고 또한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를 표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만약 우리가 전통을 가졌다면, 이는 우리가 우리의 최선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회사와 다른  기업가들이 우리가 믿는 것을 믿게끔 하는 좋은 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말고도 많은 좋은 머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통 없이 힘겨운 시간을 겪을 수 있죠. 새로운 회사, 스타트 업들이 그럴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것들이 돈과 결부되어 있다면, 우린 진작에 문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는 이루어냈지만, 돈은 없었습니다! 지점들을 가진 다른 회사들이 있었죠- 무려 천 개나요! 모두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고, 매니저들과 커리어 패스를 가진 회사들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더 나은 한 컵의 커피에 대한 비전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우리는 머신의 사용자로서의 바리스타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사용자들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차를 만드면서 엔지니어는 절대 그 차를 운전하지 않는 회사들이 있죠. 에스프레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통을 가지고 있죠. 우리에게 있어 전통이란, 우리의 역사이며 경험이고, 우리가 만들어 온 문화입니다.  그 작업은, 무평의 것이죠.

다른 기자분이 물은 적이 있는데요.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근성 backbone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전통이라고요. 혁신의 전통이 있습니다. 라마르조코를 바라보면, 이 회사만이 가진 조그만 방식이 있어요. 그것이 오늘날까지 제품을 진화시켜온 것이고 또한 매우 독특한 것이죠. 한 개 대신 두 개의 보일러- 단순하죠, 하지만 독특합니다. 우리는 비전에 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밤비 형제는 플로렌스를 벗어나 그 너머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팔러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초기에는 그들이 모든 머신에 붙였던 서비스 부서를 위한 스티커에 코드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 스티커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제가 전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심발리에서 여기에 처음 왔을 때, 마치 눈을 뜨이는 듯했어요. 모든 것이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었죠. 그들은 한 대의 머신을 하나 하나, 하나의 카페를 위해 생산했습니다. 브로셔도,  복제 시리즈도 없었죠. 모든것이 한 카트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몇 가지 머신 모델들은 겨우 다섯 대를 만들었죠.

이런 방식의 비즈니스는 한 카페가 새로운 머신을 원할 때마다, 당신이 새 것을 창조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설계하고, 모양을 잡고, 바리스타의 키에 맞춰 만들죠… 그리고 우리가 국제적인 청중을 맞게 되면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전통에 진화가 일어납니다. 혹은 진화의 전통일지도 모르죠. 우리 비즈니스의 모든 분야를 반영해볼 때요. 오늘날의 매우 적은 부분만이 상업화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특별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는요. 그들은 그저… 그저 만들었죠. 그들은 당신이 제일 많이 직면하는 최초의 수평 보일러를 만들었습니다. 상업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들이 멋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죠. 그들은 그저… 그들은 만들었죠.

그래서, 이 회사는 오래되었고 또한 새롭습니다. 그것은 진화입니다.  혹은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것이며 또한 혁신입니다. 확실한 선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일이 현재, 제 일이, 라마르조코의 전통과 역사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진화의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비즈니스의 모든 측면에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라마르조코에서의 초기 시절, 당신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의 개최를 돕고 스폰서가 되어 주었죠. 라마르조코가다시 WBC의 스폰서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Never say never. 삶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우리와 업계에 관련 있는 것이라면, 고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죠. 그 당시에는 우리에게 적잘한 것이었고, 여러 해 전에 우리의 영역에 정의를 베풀었던 많은 것 중 하나였죠. 또한 우리 것과 같은 특정 제품을 받고자 하는 더 작은 바리스타들의 커뮤니티에 우리 제품을 홍보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초기에 가장 큰 헌신은 운송이었습니다. 경연에 임하는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머신을 설치하는 것 말입니다.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의 피자가게에서 열리는 경연에 운전해 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업계에서 모험을 원했죠. 우리는 그들을 믿었고, 스페셜티 커피 협회를 믿었으며 우리가 팔을 걷어부치고 우리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경험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세일즈의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몰랐습니다. 그것은 매우 의문이었죠. 하지만 그때는 그게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보다 상업적이 되었을 때, 그것이 보다 돈에 대한 것이며, 그 질적인 시험이 더 상업적으로 되었을 때, 모든 이가 그 시험에 통과했다고 느끼게 했죠. 돈을 쓴 사람이면 누구나 시험에 통화했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기준을 가진 적이 없었고, 당시엔 우리가 유일했죠.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것이 더이상 진정한 우리 회사 정신의 정수와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더이상 비즈니스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았고, 그 때문에 물러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WBC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그리고 스프럿지와 다른 많은 동지들이 있다는 것도 역시 기쁩니다.  그것을 믿고 거기에 투자하며 이를 지지해준다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이 한 모든 일에 대하여 인정합니다. 다만 우리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죠. 아시다시피, 우리는 호텔 방에서 WBC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 제게 솔직히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마르조코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전략은 비단 되돌려주고 지구를 배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회사에 대해 배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 제품에 대해 하는 일, 우리가 이익을 위해 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돌려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에게 돌려주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지도, 제품을 개발하지도 못할 겁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우리의 일로 성공하지 못하면 말입니다. 지구를 도울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그곳에서 옵니다. 이는 우리가 극도로 민감하게 보는 문제이며 또한 저는 제 스스로를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지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이 회사가 미래지향적이기를 바랍니다. 비즈니스는 모든 것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수익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요. 그래서 저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이익을 모든 것을 성장시키는 데 사용하고 지구에 끼치는 손해와 이산화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우리의 전략을  사용한다면요.

 

고맙습니다.

 

기사 원문 출처: Guido Bernardinelli Of La Marzocco: The Sprudge Executiv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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