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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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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바리스타가 아니었다. 물론 커피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긴 했지만. 누구나 그랬듯 과학자, 변호사, 우주비행사, 심지어 연예인.. 이런 직업들이 매 학기 자기 소개를 스쳐지나가곤 했다. 20대 초반 대학생일 때에조차, 커피는 그저 취향에 불과했다. 심지어 처음 일했던 카페에서 쓰던 머신은 스팀밀크까지 나오는 전자동 머신이었다. 막연하게 나중에 나이 들면 카페’나’ 하면서 책이’나’ 읽고 친구들이 모일 ‘아지트’ 삼아볼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커피 사업을 하셨던 부모님조차, 나의 장래에 ‘바리스타’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신 적은 없었다. 결코.

같은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 특히 오너 바리스타들을 만나보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 A는 송파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의 전공은 법학이었다. 망원동의 B는 어떤가, 그는 원래 화가를 꿈꿨다. 그리고 이태원의 C는 완벽한 공대생이었다. 우리들 중 누구도, 바리스타를 어린 시절 꿈의 직업으로 여겨본 사람이 없다. 심지어 이것이 직업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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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바리스타들은 아예 대학 전공이 바리스타학과이거나, 정말 어릴 때부터 바리스타의 꿈을 키워온 친구들이 늘고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참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도 그랬다. 카이스트에 가면 다들 그렇게 좋은 기숙사에 사는 줄 알았지.. 대학 가면 다 <뉴논스톱> 같을 줄 알았고… 잠깐, 눈물 좀 닦고…

공부를 하거나 다른 커리어를 향해 나아가는 중에, 잠깐 할 수 있는 일로 보이는 직업들은 많다. 바리스타 역시 그런 직업 중 하나다. 내가 바리스타를 시작하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바리스타를 일반적인 직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일시적’인 느낌이 크다.

그것은 실제로 바리스타로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조차 영향을 준다. 나의 ‘일’은 보다 존경받을 수 없을까? ‘파트타임 잡’이 아니라 정식의 ‘직업’으로서 ‘바리스타’가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질문이 나를 지금의 바리스타 ‘김커피’로 키운 것일지도 모른다. 직업이란 연마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를 위해 커피를 갈고 닦고 있으니 말이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전통적인 직업의 선택지에서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그저 스치는 바람 같은 것일까?

다양한 일들을 거쳐오면서, 나는 결국 카페를 오픈하고, 바리스타로서 살아가고 있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던 적도, 정말 (작긴 했지만) 잡지사에서 글을 쓴 적도 있고, 출판사에서 편집을 해보기도 했다. 대학교 때는 어떤가, 바텐더도, 편의점도, 주유원도 해봤고, 영화관에서 팝콘도 팔아보았다. 이 다양한 삶의 궤적을 설명하는 데에는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혹은 ‘소설을 위한 경험 쌓기’ 같은 이유를 들 수 있었다. 한 식당에서 서빙하며 모진 진상을 만난 저녁에는 ‘괜찮아, 난 평생 서빙하진 않을 거니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저 아르바이트로 생각했던 카페 알바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으로 성장해오는 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들만 만나왔다. 그중에는 정말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앞치마를 내던지고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비친 이유는, ‘진짜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취업’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또한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는 ‘알바’가 아니라 정식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가 이러한 생각을 만들고 있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소설가를 꿈꾸던 때, 나는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유치원 때 친구들의 꿈은 정말이지 다양했다. ‘화가’, ‘우주 비행사’, ‘과학자’, ‘성악가’… 이런 꿈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비슷한 한 가지로 취합되었다. 이 나라에서 예술로 먹고 살기는 힘들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안정적인 공무원이 된다. 공부를 많이 한 친구들은 대기업 공채에 매달린다.

[바리스타는 이토록 멋있는 직업이 맞다]
우리 사회에서는 공무원 내지 대기업 직원이 아니면 제대로 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가슴이 아니라 돈을 쫓아 직업을 선택하게끔 한다. ‘가슴이 뛰는 일’ 보다는 ‘남들이 알아주는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다. 어른이기에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문득, 사무실에 앉아, 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붐비는 강남역 사거리 복판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마주치고 만다. 주위를 둘러싼 어떤 사람도, 당신의 열정에 관심이 없는, 수십, 수백의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초등학생들조차 직업 선택에 있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돈’의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에 나는 매번 놀란다. 당연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것이 좋다. 최대한 돌밭을 거치지 않고서 말이다. 그리고, 바리스타라는 직업 역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바리스타로서 이야기할 때,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니까. 커피는 나의 열정이자 직업이고, 이 직업을 지속하는 데 있어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바리스타들도 나아가야 한다.

바리스타는 카페가 생긴 이후로, 이미 하나의 직업으로서 존재해왔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 산업 내에서 바리스타가 이룰 수 있는 다양한 갈래의 전문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로스팅이나 교육, 카페 운영 및 경영, 경연 참가 혹은 심사위원 등 다양한 분야의 바리스타로서 활약하고 있다.이제는 ‘아이돌’로서 활약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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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 같은 세계적인 유명 셰프들이 존재한다. 이연복이나 샘킴 같은 우리 나라의 스타셰프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이름을 내건 인스턴트 제품이 진열대를 장악하고, ‘쿡테이너’라는 말이 나올만큼 방송에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스타였을까? 요리사라는 직업이 ‘셰프’라는 이름으로 멋진 일로서 보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처음 요리를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그들의 선택을 진정으로 존중해준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유명 셰프가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그들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 이를 말해준다.

[최근에 늘어나는 로스터리 카페들은 바리스타들이 더욱 전문적인 직업임을 보여준다]
커피 산업에 있어서, 바리스타들이 나아가는 길 역시 비슷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리스타는 단순히 바 앞에 서서, 추출만 하는 사람이어서는 안된다. 15분만에 남의 냉장고에서 나온 재료들로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어내는 셰프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모든 재료의 특성과 조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은 조리대 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재료를 위해 산지를 방문하고, 수십, 수백, 수천 번의 실험을 했을 것이다.

바리스타도 마찬가지다. 커핑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잘나가는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를 체험하고, 혹은 산지로 직접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카페 운영을 하고 있다면 마케팅 서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직접 영상을 편집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을 간과하고 있다면, 아마 그는 직업으로서의 바리스타가 아니라, 정말 스치는 바람 같은 일로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훨씬 멋진 직업, 바리스타

직업 ‘바리스타’로서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바리스타는 이제 더이상, 커피를 서빙하는 사람으로서만 정의되지 않는다. 커피에 대한 전문가 그 이상이 바리스타의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바리스타는 커피 산업에 있어 고객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농장에서 자란 원두를 소비자에게 건네는 가장 마지막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커피 체리가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있어야 하고), 소비자는 내가 건네는 단 한 잔으로 이 오랜 여정을 판단해버린다.

농장에서 농부가 흘린 땀, 최상의 원두를 위해 시도한 로스터의 수많은 프로파일들, 최고의 기술로 탄생한 하이엔드 머신, 그리고 길게는 몇 년을 연마해온 당신의 바리스타 스킬과 고심 끝에 내놓은 레시피-! 이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나는 때때로, 아니 자주 생각한다.

최상의 조건에서 이 모든 과정의 결과물을 받아든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바리스타는 존재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 책임감은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열정이다. 매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새로운 커피 마스터가 탄생한다. 챔피언은 전세계의 바리스타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커피에 관심을 기울일 요건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존재이다.

새로운 커피의 세계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이 멋진 커피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은 바로 우리, 이 바리스타들이다.

[자신있게 권합니다, 이 멋진 한 잔!]
우리는 자영업자이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진상 손님의 욕받이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학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듯이, 매일의 커피는 달라진다. 매년 새로운 농장이 최고 상을 받고, 작년에 유행한 메뉴는 올해에는 흔적도 없이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사라져버린다. 한때 그토록 핫했던 경리단길은 이제 빈 점포로 한산해져간다.

반짝하는 인기로 스타가 되고 싶다거나 그저 멋져보여서, 바리스타가 되겠다면 조금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세상에는 묵묵히, 그저 커피가 좋아서, 이 좋은 커피를 더욱 잘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커핑을 하고, 원두를 볶고, 라떼 아트를 연습하는 바리스타가 훨씬 많다고 믿고 싶다. 그런 바리스타들이 점점 늘어나고, 진짜 직업으로서 ‘바리스타’가 존중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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