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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쇄도가 브루잉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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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학창시절에 과학을 싫어했던 내 자신을 후회한다. 수학도, 화학도. 전형적인 문과 타입이었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화학이니 수학이니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이 이렇게 한 치 앞을 모른다. 커피를 하면 할수록, 이것은 과학에 더 가깝다. 머리가 좀 더 팽팽 돌아갈 때 공부해놓을걸. 기초가 탄탄해야 인생이 탄탄할 줄 그땐 몰랐지.

여튼, 커피 맛을 더 맛있게, 균형있게, 볼륨감 있게 만들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놀라운 풍미와 은은한 뒷맛이 느껴지는 바디감. 이 모든 것을 쥐고 싶은 것은 절대 꿈같은 일만은 아니다. 사실, 기초적인 부분만 챙겨도 가능한 일이다.

이미 잘 알고 있듯, 원두 자체나 머신의 성능 외에도 커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아주 다양하다. 추출시간, 물의 온도, 브루잉 방식 등등 말이다. 하지만 더 나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좋은 원두와 고퀄의 장비, 그리고… 분쇄도다.

도대체 분쇄도가 어떻게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잘 다룰 수 있을지 준비해보았다.

관련기사커피 분쇄도: 왜 중요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생긴 것은 모두 달라도 우린  다 같은 원두라네. 출처: Cafes El Magnifico]

 추출 이전에, 분쇄가 있었나니,

사람들은 보통, 맛있는 커피는 추출에 있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물과 원두가 만나 풍미와 아로마가 어우러져 추출되는 과정 자체, 그 순간순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여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정말 맛있는 한 잔의 음료를 얻어낼 수 있다. 단순히 좋은 원두와 하이엔드급 머신이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전자동 머신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을 것이다.

[추출 직전에 분쇄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풍미와 아로마의 조합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커피에 단맛을 더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쓴맛이 강해진다. 잘하면 신선한 과일향이, 또 어떤 상황에서는 눈살을 찌푸릴만큼 독한 맛을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이것들은 전부 다른 비율로 추출된다.

커피는 사실,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추출된다. 산미와 당분, 쓴맛이 먼저 추출되고, 그다음이 떫은 맛이 끌려나온다.

내가 지난 번에 쓴 기사, ‘브루잉할 때 산미를 조절하는 방법‘ 을 읽어본 독자라면 알 것이다. 추출 온도를 조절함으로써, 음료를 위한 다양한 변수들을 콘트롤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커피의 풍미를 결정할 수 있다. 프로파일을 만들어 내고, 레시피를 창조하는 것은 별다를 것이 아니다. 지금 손에 쥔 원두를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추출 방식을 바꾸어보는 것이다. 계속해서 샷을 뽑아보고, 손목이 시큰하도록 푸어오버 해본다. 여러 가지 변수를 바꿔가면서 연습해보자. 이때 분쇄도는 정말 중요한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추출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전에 원두를 갈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커피의 풍미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커피의 풍미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분쇄도, 브루잉 시간, 물의 온도, 원두의 품질, 로스팅 정도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분쇄하는가? 원두를 알아야 분쇄를 안다]

 

1. 원두, 너의 존재는

세상에 같은 원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원산지, 다양한 품종, 그리고 어떻게 가공되었는지도 각각 다르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은 커피 추출에 있어서 각기 다른 영향을 준다. 그러니 원두에 대해 아는 것은 기초 중의 기초이다. 이에 대한 공부는 솔직히… 끝이 없다. 매번 다른 가공 방식이 개발된다. 새로운 품종은 매년 경쟁을 다투고 있다. 내가 커피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스페셜티’였는데, 이제는 ‘마이크로랏’을 따지고 있다.

이런 글들을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관련기사: 꼭 알아야 하는 8가지 아라비카 품종
                        커피 체리 가공 방식이 커피 맛에 미치는 영향:Part 1. 내추럴(건식)  
                        커피 체리 가공 방식이 커피 맛에 미치는 영향: Part 2. 워시드(습식)

 

2. 로스트 레벨 확인하기

원두가 덜 익으면, 신맛이 더 난다. 너무 태우면, 쓴 맛과 스모키한 향을 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의 세계는 훨씬 심오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라이트 로스트는 과일향을 머금고 산미를 드러낸다. 미디엄 로스트는 좀 더 단맛이 나기 마련이다. 다크 로스트는 쓴맛과 함께 강한 바디감을 자랑한다. 그리고 다른 것들에 비해 다채로운 풍미가 덜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련기사: 속까지 고르게 익어야 로스팅 잘 된 원두다!

하지만 이것은 풍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배전일수록, 더 빠른 혼합물이 추출된다. 이 점을 유의하여 추출해야 한다!

 3. 추출시간

당연히, 오래 브루잉할수록, 더 많이 추출된다.

4. 물의 온도

역시 더 뜨거울수록, 더 많이 추출된다.

5. 드디어, 분쇄도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분쇄도는 추출의 신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최고의 요소 중 하나다. 커피를 추출할 때 풍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동안 추출할 때, 원두 가루의 표면적이 클수록 물이 원두 속의 성분을 더욱 잘 뽑아낼 수 있다.

 

분쇄도가 잘못 설정되었다면?

이상적인 분쇄도를 얻었다면, 맛있고 균형잡힌 커피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 설정되었을 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분쇄도가 너무 거칠면, 다소 밍밍하고 빈약한 바디감을 얻게 된다. 거칠게 갈렸다는 것은 곧 표면적이 작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에는 추출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너무 곱게 갈리는 것도 좋지 않다. 이 경우에는 과다추출이 생긴다. 이 경우엔 기분나쁜 쓴맛이, 심지어는 담뱃재맛까지 끌어낼 수도 있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은 법이다.

 

‘절대분쇄도’는 없다

 

 

 

 

 

[브루잉 방식에 따라 분쇄도는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사진 출처: bruer]

이상적인 분쇄도는 다음과 같은 많은 요인들에 의해 좌우된다.

1. 원두 그 자체

모든 원두가 다 같은 맛은 아닌 것처럼, 새로운 원두를 샀다면 최선의 맛을 위해서 다시금 분쇄도를 조정해야 한다.

2. 브루잉 장비

각각의 브루잉 장비는 서로 다른 분쇄도를 요구한다. 에스프레소의 경우에는 더욱 더 고운 분쇄도를 적용한다. 프렌치 프레스를 사용한다면, 일반적으로 좀 더 굵은 입자가 제격이다.

이런 차이점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프렌치 프레스는 물에 커피가 완전히 잠기는 ‘완전침지식’을 사용하는 도구이다. 보통 4분 정도 걸리는 브루잉 시간은 거친 분쇄도로도 충분하다. 이 경우에 너무 고운 입자라면 쓸데없는 맛까지 끌어내버리게 된다.

에스프레소는 완전 반대의 경우로 볼 수 있다. 알다시피, 겨우 20~30초만에 추출이 진행되는 데다, 9bar 이상의 압력으로 물을 투과시키기 때문에 보다 고운 입자가 적합하다. 물이 닿는 짧은 시간 동안 충분한 성분을 뽑아내려면 표면적이 커야 할테니까 말이다.

 3. 로스팅 날짜

커피 역시 농작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달걀이나 우유와 같은 식품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항상 신선함이 생명이다. 일단 로스팅되면, 원두는 산화하기 시작해 그 풍미를 잃게 된다. 적절한 그라인딩은 이를 보완해줄 수 있다. 우선 도징을 늘리고 더 고운 입자로 간다. 그러면 몇 달 묵은 원두도 일단은 먹을만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괜찮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묵은 원두보다는 숙성이 잘 되고 산패가 되지 않은 상태-신선한 원두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4. 로스트 레벨

원두를 얼마나 볶았는가는 단순히 추출할 수 있는 풍미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풍미가 얼마나 빨리 추출되는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배전이라면 더욱 잘 용해되어나올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미 더 오래 열에 노출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출이 보다 빨라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쇄도를 조정하면 좋을까?

강배전된 원두라면 더욱 거칠게, 약배전이라면 보다 곱게 갈아준다.

 

분쇄도: 레시피의 또다른 구원자

[성스러운 원두님의 자태…!]

바리스타로서, 보다 쉽게 커피의 풍미를 통제할 수 있으려면, 분쇄도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루잉에 있어 물론 분쇄도 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다. 이미 위에서도 나열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라인딩에 있어서 변화를 주는 것은 다른 어떤 프로세스보다 손쉬운 방법이다. 단지 그라인더를 약간 조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두를 다시 볶을 필요도, 새로운 원두를 사올 필요도 없다.

더욱이, 분쇄도는 다른 요소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브루잉 시간 같은 것 말이다. 입자가 고운가, 거친가에 따라 브루잉 시간이 달라진다. 크기와 모양이 같은 유리병 안에 모래를 채웠는가, 자갈을 채웠는가에 따라 물이 투과되는 시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다 고운 입자들이 채워진 병 속을 통과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물의 온도에 대하여서보다, 분쇄도에 있어서 더 엄격하게 다뤄야할 수도 있다. 잘못된 분쇄도는 커피의 맛에 생각보다 극단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떤 원두를 사용하여 얼마만큼의 용량의 물을 어느 온도에서 어떤 방식으로 투과시켜 커피 성분을 용해시킬 것인가’를 레시피라 정의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분쇄도 하나로 이 모든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들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까?

[원두마다 다른 분쇄도를 적용하는 좋은 예. 출처: 라마르조코 홈페이지]

이제 적절한 분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과연 ‘적절한’ 분쇄도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일관성이 제일 중요하다. 원두가 각기 다른 사이즈로 분쇄되었다면, 역시 다른 비율로 추출될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맛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균일한 분쇄도를 원한다면, 역시 그라인더의 퀄리티가 답이다.

그렇다고 그라인더의 퀄리티만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 주변에도 비싼 장비를 들여놓고 생각보다 커피 맛이 별로라든지, 고장이 잘 나더라며 불평하는 분들이 있다. 아무래도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가격이긴 하다. 이런 경우는 보통은 제대로 된 관리가 소홀한 경우가 더 많다. 모든 기계는 자동차와 같이 유지 보수가 중요하다.

그라인더틑 유지와 청소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실제로 식품이 직접 닿는 것이다보니 정기적인 청소와 교체 시기에 맞게 날을 갈아주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모든 설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라인더를 적절하게 세팅하기 위해서, 하고자하는 브루잉 방식에 권장되는 사이즈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브루잉하게 될 커피를 고려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적합하리라 여겨지는 사이즈를 적용해보자. 당연히 지금 어떤 레시피를 취하고 있는지를 기록해두어야 한다. 커피 맛을 보고, 기록하는 것을 반복해보자.

추출된 커피의 맛이 기대와 다르다면, 한 번에 한 가지씩의 변수만을 달리하여 여러 번 반복해 본다. 물론, 어떤 그라인더들은 다른 것들에 비해 세팅할 수 있는 값이 더 다양해서, 당신이 훨씬 더 쉽게 각각의 레시피를 통제할 수 있게끔 해준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지금 적용하고 있는 분쇄도가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맛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기록해두었다가, 다음에 다시 적용할 수 있도록 대비하자.

이 주제에 있어서 통달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일단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만 반복이 계속될 뿐이다. 거듭되는 테스트는 당신을 분쇄도의 신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 매장에서는 날씨에 따라, 원두를 처음 호퍼에 담은 후 경과된 시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분쇄도를 조정한다. 아무리 바빠도 이것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일단 설정된 분쇄도를 다시는 바꾸지 않는 경우는 용납하지 않는다.

날씨에 따른 분쇄도 조절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면 좋다.

관련기사: 날씨에 따른 원두 상태 및 분쇄도 조절 공식!

알고 있다. 지루하고, 피곤하고, 힘겨운 일이다. 비싼 그라인더를 사두었으니 그라인더에게 맡기고도 싶다. 하지만 결국 고객의 입맛이 알고, 내 입맛이 아는 일이다. 나름대로의 양심이며, 나름대로의 철학이다.

분쇄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라인더와 그 날의 선택이다.

그라인더 날에 대하여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관련기사: 그라인더, 어떻게 선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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